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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라이프

드니빌뇌브의 <듄>을 봤다

힘을 내서 극장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터널스가 슬슬 관을 다 먹기 시작해서 내리기 전에 얼른 보고 오려고 호다닥 예매했는데,, 이게 왜인걸 내가 예매하자마자 아이맥스 재개봉 소식이 다시 들려와...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러나 용산 아이맥스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1차는 일반관에서 뛰고 왔다. 백신 패스관이었는데 사람들이 팝콘 오지게 먹음. 진심 나 빼고 다 먹은 듯. 덕분에 마스크 속에서도 3시간 동안 팝콘 냄새 오지게 맡고 왔다.

 

일단 간략하게 볼 사람 안 볼 사람 정리부터 하고 주저리주저리 들어가겠음. 

 

내 별점: ★★★☆(3.5점)

볼 사람: 드니 빌뇌브 영화를 하나라도 보고 좋았던 사람.

           한스 짐머가 3시간 동안 폭주하는 거 보고 싶은 사람.

           웅장한 판타지 영화 좋아하는 사람. 새로운 세계관 및 설정들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

           티모시 샬라메가 잘생겼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는 사람.

안 볼 사람: 사막 싫어하는 사람. 영화가 2시간 반을 넘기면 미쳐버리는 사람.

             한 편으로 결말까지 싹 마무리 안 되는 거 극혐인 사람.   

 

+유리 방광인 사람: 나. 입장 직전에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 끝나기 20분부터 고비가 몇 번씩 옴. 

아 지금 갈까? 아 끝날 거 같은데 좀만 참자. 아 그냥 갈까?? 아냐 5분만 더 참아보고.. 얘들아 좀만 빠르게 싸우면 안 될까..

나 진심인데 앞으로 2시간 반보다 긴 영화는 인터미션 좀 넣어주시면 안 될까 영화관님들아

 

이 밑으론 완전 영화 스포일러 포함----------------------------------------------------------------------------------------------

왜 3.5점 이냐면.. 3점은 너무 적고 4점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3시간 가까이 되는 매우 긴 영화지만 흡인력이 좋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끝까지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영화가 아무래도 아직은 이야기를 기초를 다지고 밑밥을 깔아 두는 단계인지라.. 영화 전체를 생각해봤을 때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 기 기 승이라 그런지) 좀 밋밋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또 애매하다. 이건 영화의 만듦새가 떨어진다기보다는 시리즈물의 1편으로서 갖는 핸디캡일 것임. 

 

이 웅장한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고 하니 결국.. 원하던 원하지 않던 메시아의 운명을 뒤집어써버리고만 주인공의 고난기 였다. 영화는 1편이라서 고난의 시작..! 이런 느낌임. 주제 때문인지 영화는 굉장히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를 세세히 들여다보자면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들이 각각 여러 가지 있었는데 차례차례 하나씩 이야기해보겠음. 

 

젠데이아와 티모시 사이에서 세상 행복한 한스 짐머

<좋으면서 동시에 싫었던 거>

한스 짐머의 세상에서 제일 웅장한 음악. 짐머 옹의 음악은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대단했음. 음악의 웅장함은 영화 속 경관과도 잘 어우러졌고, 이야기의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려 영화에 묵-직한 무게감을 주었다. 이보다 이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도 꽤나 있었음. 그러나 이런 음악이 3시간 내내 이어진다면?? 좀 힘겨웠음. 음악이 오죽 웅장했으면 영화관에서 다리로 진동도 느껴질 정도였다. 짐머 옹의 듄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덕심은 이해하지만 다음 편에서는 좀만 진정해주세요..

 

<좋았던 점들>

1. 드니 빌뇌브의 지문과도 같은 세련되고도 아름다운 장면들.

지난번 컨택트 리뷰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드니 빌뇌브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게 화면을 연출할 줄 아는 사람임. 이 영화에서는 무엇보다도 (어쩌면 이야기 그 자체보다도) "압도적인" 분위기가 중요했는데, 드니 빌뇌브가 그 누구보다 적임자였던 것 같음. 외계행성이든 사막이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게 하는 화면이 스크린을 꽉 채우는 걸 보는 기쁨이 있었음. 특히 사막 인부 구출씬(샤이 훌루 드 첫 등장 씬)과 같이 거대한 무언가를 화면에 선보일 때 감독의 재능이 더 빛났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묻따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 생각함.

 

2. 영화의 분위기만큼이나 압도적인 티모시 샬라메의 미모. 아니 연기 얘기 할라 그랬는데 도저히 얼굴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드니 빌뇌브가 왜 티모시를 캐스팅하고 그렇게 좋아했는지 나까지 이해가 됨. 단순히 잘생겼다, 미남이 다를 떠나서 "이 영화"와 "이 역할"에 매우 적절한 얼굴이었다. 또 이 묵직한 영화를 만만치 않은 조연들 사이에서 주인공으로 이끌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내 예상보다 티모시가 매우 잘해주었음. 주인공 "폴" 역할은, 희로애락이 있는 평범한 사람+ 거대한 운명을 타고난 구원자의 이중적 면모가 적절히 섞여있음. 감정 표현이 너무 모자라면 관객이 이입하지 못해 붕 떴을 것이고, 반대로 너무 과했으면 우스꽝스러워졌을 것임. 티모시는 균형을 잘 잡고 모자람과 넘침 사이의 좁은 길을 무사히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곰 자바 씬이 첫 씬이었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했는지 모르겠음.

 

3. 좀 오타쿠적인 포인트인 것 같기도 한데 레베카 퍼거슨과 티모시 샬라메의 기묘한 케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극 중에서 둘이 정석적인 모자지간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연출된 듯함. 제시카와 폴의 관계가 모자지간이고 하지만 사제지간이기도 한데, 폴이 구원자의 운명을 타고난 것에 제시카의 의도가 있으니... 

아니 공작과 제시카는 딱 사랑하는 부부 사이 같고 공작과 폴은 따뜻한 부자지간 같은데, 제시카와 폴 사이에는 미묘하게 팽팽한 텐션이 있어 참 (내가)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시카가 폴의 어머니인 동시에 완전 베네 게 세리 트적 인물이라는 것이 참 재밌음. 물론 이러한 맛있는 관계성에는 레베카 퍼거슨의 훌륭한 연기가 한 몫했다고 보임.

 

 

<싫었던 점들>

1. 내가 원작은 안 읽어봐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마 원작에서 유래된 것 같은, 세계관의 낡음이 고대로 느껴짐. 오 2021년이나 됐는데 이런 이야기를..?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일단 아름답고 선한 아트 레이 데스와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하코넨의 대비 구도가 올드함. 아니 하코넨 가문 원래 그렇게 다 빡빡이에 기묘하게 못생긴 설정인가요. 사 다우 카도 그렇고 악역을 못생기게 그리는 거 거의 반지의 제왕 엘프 vs오크 구도에 버금감.

그리고 아무리 테마가 메시아 신앙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라고 해도, 백인 구원자+유색인 현지인의 구조 자체가 다분히 제국주의적임. 폴뿐만 아니라 아트 레이 데스 가문을 그려내는 시선 자체가 딱 제1 세계 백인이 가질 법한 관점임. 아트 레이 데스가 프레멘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들 그들 또한 결국 온건한 침략자에 불과함. 아트 레이 데스의 온건함이 그들 또한 침략자라는 사실을 흐리게 만들어선 안되는데, 영화가 이 지점을 인식은 하고 있는 듯한데 어물쩡 넘어가버림.

베네 게 세리트 설정도 조그 그렇습니다. 여성 집단이 정치집단 여기저기를 주무르는 큰 힘을 가진 것 같이 보여(샬롯 램플링의 포스가 대단하기도 하고..) 얼핏 보면 Pc 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남자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다! 이 감성임. 이거 언제 적 거예요.      

 

2. 대문자로 동양인 무시하는 거 아님?

듄에는 남녀노소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야기에서 꽤 중요한 역할임에도 제일 납작하고 성의 없이 다뤄지는 인물이 하나 있다. 장첸의 닥터유에 역할임. 극 중 아트 레이 데스를 배신해서 결국 멸문까지 이르게 하는 매우 X100 중요한 역할인데 배신의 이유와 과정을 너무 대충 처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 아니 그냥 지나가는 캐릭터도 다니고 메인이벤트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인데, 배신 서사를 대사 한 줄에 대충 욱여넣었다. 그래서 갑분 배신하고 갑분 뒤짐. 캐릭터의 특성을 배우의 소수 자성(아시안)에서 차용했는데 설정들 하나하나가 좀 킹 받음. 중화권 배우라고 동양의학을 하게 만들고, 무슨 암호로 대화하는 척하는데 듣고 보면 중국어임. 거니, 던컨 등 다른 아트 레이 데스 쪽 인물들이 그렇게 크지 않은 분량에도 큰 매력을 뿜 뿜 하는 걸 봤을 때 이건 그냥 감독이 무신경했다고 볼 수밖에 없음. 무슨 신인을 기용한 것도 아니고 연기도 잘하는 중화권 네임드 배우를 기껏 데려와놓고 저렇게 기능적으로만 소비한 꼴을 보고 있자니 드니 빌뇌브 이마 딱 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딱밤 10대만 맞아라.

 

 

어째 싫은 점들을 열내서 썼지만 그래도 재밌게 본 영화다. 듄까지 보고 나니, 드니 빌뇌브의 영화들이 정말 유사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느껴진다. 거대한 벽과 맞닥뜨리는 작은 인간. 이 벽이 그을린 사랑에서는 이야기의 진상이었다면 시카리오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이었고, 듄에서는 피하고자 하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됨.  드니 빌뇌브가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담아내는 감독임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그 특유의 연출이 이야기의 결 하고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참 재밌다.